[스크랩] 허호석시인과 아버지

2006. 9. 5. 23:39좋은글

 

 

삼십년전 쯤이니까, 참 오래전 일이다.

어느날 저녁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는데 듣다보니 나한테 온 전화다.

전화를 받으려고 아버지 옆으로 갔다.

 

날 바꿔주시지 않고 오히려 전화중간에 벌컥 화를 내신다.

" 아니, 당신 몇살이오?"

저 쪽에서는 뭐라 했는지 알 수없었다.

"아니, 나이가 오십이던 육십이던, 그게 무슨 상관이오.

아무개 바꿔달라니, 아무개씨라고 존칭을 쓰셔야지,

나이 스물이 넘은 성인인데 당신 자식 부르듯 하시면 되겠오?"

 

처음보다는 수그러든 목소리로 아버지는 훈계를했다.

참 까탈스럽게도 별난 우리 아버지셨다.

자식의 친구에게도 이십세가 넘으면 절대 반말을 쓰지않으셨다.

 

다큰 딸년에게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는데,정중하게

아무개씨 좀 바꿔주십시요,

이렇게 하지않고 아무개 바꿔주세요. 했으니 탈이 난것이다.

 

뒤에 허호석시인의 사연을 듣고 한참 웃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다보니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기분도 상했었는데

아차, 하고 자신의 결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단다.

당신 몇 살이오, 라고 물으시는데 얼결에 오십입니다. 했다나...

 

그 때 허시인 사십 초반쯤 이셨고 초등학교에 계셨다.

아버지도 선생님이셨으니....선생이 선생한테 야단을 맞은꼴이다.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고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말도 더듬었다고,

그러면서 아버지가 대단하신 분이라고,

정말 존경스럽다고 하셨었다.

 

불호령을 내렸던 아버지 오래전에 떠나셨는데

氏자 안 붙였여 벼락맞은 허시인을 신문에서 만났다.

엊그제 같은데 세월 많이도 흘렀다.

검정 베레모를 쓴 얼굴이 아슴하니 긴가민가싶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분 맞다.

30년이면 긴 세월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 길에서 만나도 전혀 알 수가 없을것이다.

신문에서야 이름과 시가 함께 나왔으니 알아봤다.

허호석 시인은 지금 어떤 모습의 아버지로 계실까.

출처 : 朱子川푸른물
글쓴이 : 朱子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