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문학 동인지(2) 2009.12.

2010. 2. 25. 15:58등단詩와 발표詩

 
우리 모두 들꽃인데
 
우리 모두 들꽃인데
그날이 오면
소리 없이 이름도 없이
지고 말아야 하는
지금도
쉬임 없이 흔들리는 들꽃인데

비 내리는 한 밤에도
들꽃은 지고
낮달이 구름을 지나는
그날에도 들꽃은 지고
얼마를 더 용서하고
다하지 못한 恨을
말해야 하나
놓친 소망의 바다에서
덧없는 미소를 뿌리던
너에게
아픔까지도 아끼며
무엇을 줄 수 있나

그날이 오면
한 잎 허망의 꽃으로
스러져야 하는
우리 모두 들꽃인데
 
잠깐만 쉬었다 가세
잠깐만 쉬었다 가세
멈추지 못하고 흘러온 세월
이 겨울 산길에
언 듯 할퀴며 지나는 소리
 
잃어버린 세월의 마당에
낙엽처럼 깔린 넝마 위에서
잠깐만 쉬었다 가세
틈틈이 눈물은 반짝이고
타다만 불꽃의 잿더미엔
죽순처럼 한이 자라는데
이것도 저것도 잠시 덮어두고
잠깐만 쉬었다 가세
 
눈뜨면 고갯마루
감았다 다시 떠도 고갯마루
열반은 못할 망정
무아의 징검다리쯤에서
잠깐만 쉬었다 가세
 
버린다는 건
자유며 평화라네
불타여 불타여
잠깐만 쉬었다 가세
 

염 부두

   김승영

 

범람한다.

넘치고 또 넘치고

꿈도 절망도 

함께 넘치던 염 부두

그러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다시 

메마른 가슴처럼

드러내던 갯벌


달빛도 덩달아 넘치다 스러지면

어두운 그늘

오래 묵은

이제 화장(火葬)이라도 해야 할

소금창고 한 구석

나는 다시 넘치고


겨울 내내 마른 풀잎

가녀린 뿌리 송두리

저 아래 어쩌면 있을지 모를

물길 찾아 조급한 밤

봄이 그렇게 여물어

한 송이씩 꽃을 피워도

이 봄 내내

다시 서럽고


 (오래전 인천 화수동 작고 허름한 부두<염부두>에 수 많은 소금배가 드나들었고

                         스므살  그 해 겨울 내내 소금 더미 아래서  나를 죽이고 있었다

 

염 부두  2.

    김승영


살아남으려는 

사내들의 절박한 욕망은

천 구백 육십 일년 겨울의 혹한을

달아 올리고


육지를 잇는 

좁고 긴 송판은   

소금가마를 나르는  

벅찬 노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출렁이며

비명을 질러 대곤 하였지


가대기꾼 등을 흐르는 땀방울은

고단한 욕구로 끓어올라

분처럼 고운 소금으로 달라붙고

이윽고 염 부두에 노을 지면

하루를 견뎌낸 등판도

숨겨둔 작은 꿈도 

한 사발 가득한 막걸리에

온통 붉게 물들어 타오르고


바다는 여전히 넘치고

                             09.3.13


가대기:창고나 부두따위에서 인부쌀가마니 따위의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

해 지고 일 끝나면 근처에 즐비하던 싸구려 주막에서 가대기꾼들의 고단한 마음과 몸이 취기로 달아올라 고함과 싸움이 난무하곤 했다.


 

염 부두  3.

    김승영

 

갯바람에 실려 오는

달콤한 바다 내음도 없던

곰삭은 부두


부두를 덮은 소금 냄새와

짐꾼들이 뿜어내는

숨찬 고함 소리

흐르다 얼어버린 하수구

피부 속까지 배어드는

생선 비린내

그런 것들도 내게는

낭만이라고 우기던 부두

허기진 꿈들이

파도 되어 공허로

밀려오고 밀려가고


어느 순간 길을 잃었던

오늘은 아무래도

그 부두엘 가봐야겠다



         2009.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