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광희문에서 숭례문까지

2009. 4. 14. 22:23좋은글

 

 

 

광희문 앞에 섰다.

광희문은 지금의 자리가 아니었다.

큰길을 내느라 15미터 쯤 옆으로 옮겨져 온 것이다.

길이 조금만 돌아가면 되었을 것을,

성곽을 쌓았던 돌덩이들이 제자리를 잃고 새로 쌓아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저 성을 쌓았던 일손은 이미 백골이 진토되어 흔적도 없는데

그 흔적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광희문을 지나 끊어진 길을 다시 이어간다.

네모 반듯한 돌담을 올려다보니 개나리가 흐드러졌다.

돌담 틈을 파고드는 담쟁이 덩쿨, 저 덩쿨의 뿌리는 어디일까.

내 조상의 시작을 거슬러 거슬러 가면 어딜까.

너의 뿌리도 600년을 거슬러 왔더냐.

숱한 땀과 핏물이 베인 돌담장이 무거운 소리를 낸다.

끙!

 

 

돌을 뜬다.

구멍속에 나무 말뚝을 박고서 물을 부어두면 나무가 팽창하면서 돌은 갈라진다.

칼로 썰어 낸 것처럼 원하는 두깨로 말끔하게 잘린다.

그래서 돌은 뜬다고 한다.

나무는 켜고 돌은 뜬다.

작은 저 구멍속에 얼마나 많은 역사가 오갔는가.

이제는 비바람에 닿아진 역사의 틈,

틈,틈,틈.... 치욕과 울분의 역사가 그 틈에 가득하다.

 

 

사방 두자씩 되는 커다란 돌판에 새겨진 글자는 뭘까.

하양시면....도대체 뭘까.

손바닥으로 쓸어보니 부드럽다.

저 글을 새긴 손길도 끌도 정도, 이제는 흔적이 없는데 돌은 여여하다.

바람이 잔잔하게 돌아나간다.

 

 

남산제비꽃이 돌틈에 피어있다.

햇살이 내리는 쪽으로 꽃잎은 안간힘을 써 피었다.

생명의 경이로움, 그 경건함에 가슴이 뭉클함도 잠시 조금은 겁이 난다.

산다는 게 이렇게 무서움인가.

질긴 생명의 처절함에 무섬증이 스민다.

인생이란 매양 처절하기만 한것은 아니겠지만,

 

 

 

얘야, 무슨 이야기가 들리니!

가만히 귀 기울여 보렴,

아주 오래전에 너의 할아버지의 할어버지, 그 위의 할아버지가....또 할아버지가, 이 담을

손끝이 문드러지게 쌓았더란다. 얘야, 600년의 시간을 네가 알겠니.

나도 그 세월의 감촉을 말할 수가 없는데 ....너는 알겠구나.

 

 

돌과 돌사이에 작은 돌을 고이고 다시 쌓아 올리고, 담은 그래서 남아있다.

틈에 돌을 껴 넣어야 서로의 밀어주는 힘이 실리어 튼튼하게 지탱이 된다.

그대와 내가 서로 신뢰하고 힘을 보태면서 살아가면 단단한 삶이 되듯,

작은 배려와 나눔이 저 웅장한 담장을 버티게 하는 힘이듯이,

그 서로을 밀어주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과학이 울고 간다지.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사방아귀 딱딱 맞추려 하지말자.

휘었으면 휜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성곽을 쌓았다.

몇 백년의 세월에도 허물어지지 않고 남아 있음은 그래서다.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자르고 일직선으로 곧게만 길을 내는 요즘,

느리고 휜어진 옛조상의 지혜는 실종되었다.

다시 찾아야 하는데 어디서 찾아야하나.

땅 생긴대로 그 땅위에 성벽을 쌓은것은 게을러서도 미련해서도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것, 그게 무너지지않고 긴세월을 버티고 있는 해답이다.

 

 

 

놀랍게도 허물어지고 방치되었던 성곽을 볼모삼아 집이 지어져있다.

저 돌이 어떤 돌인지 알고 지었을까.

크기가 같은 돌맹이만 골라서 석축을 쌓았다.

그 위에 집을 짓고 600년의 피땀을 병풍삼아 살고 있다니...

 

광희문에서 장충동을 지나 남산을 돌아오는데  헐어진 담장위에 지어진 집을을 만난다.

어떤 집은 기둥으로 쓰여진 담장도 있다.

남산아래 자유센타가 있다.

그 기관의 담장도 다름아닌 성곽의 돌로 쌓았다.

공공기관도 성곽 돌덩이를 아무렇지않게 담장으로 쓰다니....아프다.

울분을 토해내기도 기가 막히다. 우리는 너무 무심하게 죄송하게 살았다.

역사란 무엇인가.

정말 우리의 역사란 무엇일까!

 

아침 11시에 시작된 답사가 오후 5시에 끝났다.

답사 마지막 지점, 숭례문앞에 섰다.

허물어진 역사를 다시 본다.

매케한 냄새가 심장 깊은곳을 파고든다.

시뻘겋게 불길이 솟는다.

가슴이 뜨겁다.

 

그래, 이게 역사야!

 

출처 : 朱子川푸른물
글쓴이 : 朱子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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