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의 뜰 (동인시집) 2008. 12.

2009. 1. 3. 15:09등단詩와 발표詩

서정의 뜰 (동인시집) 20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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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詩와 발표詩 | 2008/12/27 (토)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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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月亭 김승영

낙화로 누운 꽃잎
한 움큼씩
밤하늘 향해 뿌리던
창백한 그대 손가락 사이로
다시
그 만큼의 노여움
별빛 되어 쏟아져 내리는
서러운 소망을 보았네

지울 수 없는
갈등은 상처로 남아
여전히 잔혹한 봄날은 가고
바람 없이도
꽃잎 지던걸
이제 알겠네

오래인 염원으로
기다린 봄날이 아까워
차마 돌아서지 못해
타는 가슴을 저 꽃은 알까
낙화로 누운 꽃잎
허공 향해 뿌리는 설음을
지나는 바람은 알까
          2008년 어느 봄날 아내와 산책길에서

 
내 가을은 다 어디로 갔나
                 김승영
 
내 가을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 있나 내 가을은
 
늘상 한구석 비워두고
기다린 가을
위태롭게 매달려 여무는
뒷뜰 수세미처럼
가슴 속 한 자리
노여움으로 기다린
내 빈곤한 계절이여
 
기다림 속에서
내 가을은 얼마나
아름답게 애처롭던가
여름밤의 밀어처럼
하마
밤마다 가시로 돋아나
나를 깨우던 가을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나
 
죽었던 그리움
살려내리라
우수로 기다린 가을
실날같은 연(緣)에 매달려
한 구석 비워놓고
기다린 가을
다 어디로 갔나
 
어디에 있나 내 가을은
 
 
 
울지 않게하라
        이 진창길에서
무엇을 찾고 있나
거기서 건져낸 건
탄식과 어두움뿐이다
소리치며 무너져 내리던
핏빛 눈물방울과
덧없이 바스라지던
병든 잎들뿐이다

이 겨울 바닷가에서
무얼 찾고 있나
거기서 건져낸 건
남루한 영혼과 타오르던 소망의
폭풍뿐이다
이 주점 탁자에서
무얼 찾고 있나
쉰 목소리로 부르던
고달픈 넋의 노래뿐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는
사람의 외침뿐이다

울지 않게 하라
다만
그리움에 울게 하라
 
                          겨울 바람 속에서
                                               김승영
                             저 끝없는 소망의 언덕에서
                                                   미처 가을 의 스산한 사랑도
                                                             울지 못하고
                                                          겨울 바람이 분다
 
영혼이 딍굴다 돌아선
어느 길목에서도
눈물겨워라
달은 겨울 하늘에 떠서
차게 떨고 있다
 
생의 한 가운데서
저리게 기도하던 것들을
무참히 팽개치려는 절망의 색깔로
달빛은 가랗안고
그것은 어느 때
신화 속에서
찬연히 빛났었나
 
차마 시 한편 읽지 못하고
두렵게 떨며 홀로 지켜온
세월은 그대로 사위어 가는데
겨울 바람 속에서
아직
서러움의 무게만큼
연민의 불꽃으로 타오르리라
그 정결한 바람 속에서
노래하리라
모르겠다
 
 
세월은 회한의 그늘아래
돌고 또 돌고
이 순간을
지나가는
연약한 우리 삶
 
아스라한 심연 속에서도
劫은 찰라를 포식하고 있다
 
어느 때
꿈을 심을 적이 있었지
지금은 먼 과거에서
존재할 뿐이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주어진 시간만은
꼭히 살아야 한다는 걸
의무의 場으로라도
마껴진 시간만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이 진창에 발을 빠뜨리고
온몸을 끝도 없이
떨고 있어야 하는
이유도
나는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