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예비전

2006. 11. 22. 20:42나의 글

                                             "문예비전" 2006년 연말호에 실린 시 두편.

이제사 비는 내리고

 

                    김승영

 

흘러가 이제는 자취도 없는
빛 바랜 그림자를 안고
말라버린 그리움에 가라앉아
오래 잠든 내게
그는 바람으로 와서
나를 깨우고 있었다.

 

만장(輓章)처럼
그렇게 사랑은 가고
지하 천 미터쯤의 어둠 속에서
갈증으로 타고 있을 때
그는 봄비처럼 그렇게 와서
나를 깨우고 있었지.

 

이제 넝마 되어버린
그 바다의 노을
끝자락을 놓을 수 없어
조각나 소멸해 가던 가슴에
풀롯의 선율로
그는 그렇게 내게로 와서
나를 깨우고 있었다

 

비는 가슴을 적시며 왔고
바람은 내 잠을 흔들고 있었지
이제 깨어 일어나
그가 연주하는 뜨거운 음색으로
춤을 추어야겠다
노래도 불러야겠다.

 

 

잔영(殘影)

 

                김승영

 

내가 지금도 서러워
잠에서 깨어
다시 목이 메이는 것은
어머니가 이제 정말 떠나셔서가 아니라
아직 어머니가
내 안에 남아 계신 까닭이다.

 

아직 버릴 수 없는
이승에서의 잔영(殘影)이
아직 남아 있는 까닭이다
내가 놓지 못하는 것들과
어머니가 놓을 수 없는 것들이
허공에서 표류하며 너울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춤이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굿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 있는 혼(魂)과 저기 있는 혼(魂)이
마주해 손잡고 추는 춤이
달 그림자 아래서
원혼( 魂)의 주술(呪術)을 노래하며
눈처럼 하얀 옷자락을 끌고 있다

哭은 끝나지 않았다

 

지울 수 없는 환영(幻影)들과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들이
내 밤을 막막하게 하는
그 이유를 난 모르겠다.
哭은 끝나야한다

 

哭은 끝나지 않았다


2006. 9월. 어머님 첫 忌日에.

 

출처 : 문예비전
글쓴이 : 詩人의 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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