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2010. 5. 5. 21:48좋은글

막걸리는 “마구 걸렀다”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모주(母酒), 동동주, (왕)대포, 젓내기술(논산), 탁배기(제주),

탁주(경북)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우리에게 걸쭉한 막걸리는 일용할 양식이었다.

몽골인들은 마유주(馬乳酒)를 즐겨 마시는데 요구르트와 술의 중간 음료로

막걸리와 유사하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 영양식으로서

또는 갈증을 해소하는 데 안전한 음료로서 수천 년 동안 애용되어 온 술이었다.

막걸리는 보통 알코올 농도 6%로서 열량은 100ml당 46kcal 정도이다.

생막걸리에는 유산균을 비롯한 몸에 유익한 미생물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곡물에 있던 미량 원소들이 대부분 남아 있어 영양소가 풍부하다

 

막걸리는 풍류(風流) 교사 같은 존재이다. 추상(秋霜) 같은 재상(宰相)도,

대쪽 같은 선비도 막걸리 한 잔이면 여유를 갖는 풍류객이 되었다.

서예가 한석봉(韓石峯)은 막걸리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 시(詩)로 읊었다.

 

‘짚방석(方席) 내지 마라 낙엽(落葉)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희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재상인 황희(黃喜)는 막걸리를 좋아하여 자연을 벗하며 마셨다.

그의 막걸리 예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대초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듯드르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익자 체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황희 정승의 후예들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고유의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어 조상이 즐기던 술의 진미(眞味)를 계승하고 있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서 대대로 제조되어 온

민속주 호산춘(湖山春)이 그것이다.

조선 인조 때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채유후(蔡裕後)는

막걸리를 좋아해 격의 없는 술자리를 즐겼던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다나 쓰나 이탁주 좋고 대테 메운 질병들이 더 보기 좋네/

어룬자 박구기를 당지둥 띄워두고/

아희야 절임김칠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이탁주는 입쌀로 만든 막걸리로, 배꽃이 필 때 담근다고 해서 이화주라고도 불린다.

‘대테 메운 질병’이란 참대로 테를 두른 옹기 질그릇 병을 말한다. 아래 두 소절은

‘얼씨구, 바가지를 술동이에 둥둥 띄워놓고 마시는데, 아이야. 절인 김치면 어떠냐,

안주 없다 말고 내어 오너라’는 뜻이다. 예부터 막걸리는 푸성귀나 김치와 잘 어울렸다.

 

‘김삿갓이 어느 여름날 주막에 들러 주모에게 대포 한 잔을 청했다. 주모는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시큼하게 신 막걸리를 한 사발 내놓았다.

김삿갓은 더운 터라 허겁지겁 한 사발을 들이켰는데, 그 맛이 시금털털했다.

김삿갓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고 탁주 값을 물었다.

주모는 탁주 값이 두 닢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삿갓은 주모에게 네 닢을 주었다.

주모는 얼떨떨하여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김삿갓이 말하기를 “두 닢은 탁주 값이요,

나머지 두 닢은 초 값이요” 하였다.

막걸리는 해학과 인정, 그리고 안식을 주던 나그네들의 영원한 동반자였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3월령에는 봄에 산나물을 뜯어다가 꽃나무 아래서 술 마시는 풍경이 정겹게 그려져 있다.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부는 엮어 달고 일부는 무쳐 먹세/

떨어진 꽃잎 쓸고 앉아 병 술을 즐길 때에/

아내가 준비한 일품 안주 이것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