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한이 되어 ] 부안 기생 '매창'과 유희경

2009. 3. 27. 17:04좋은글

[그리움 한이 되어 1] 부안 기생 '매창'과 유희경

멋스런 옛 글 2007/08/23 22:05 정운현

매창(梅窓, 1573~1610)은 조선 중기 전북 부안의 기생이었다. 시를 잘 짓는다 하여 시기(詩妓)라고 불렸다. 매창이 그의 정인(情人)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과 주고받은 연시(戀詩)는 오늘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532년 부안에 내려왔다가 매창을 처음 만난 유희경. 유희경은 그러나 2년 뒤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매창과 이별하게 되었다. 그 때 매창의 나이는 방년 21세. 유희경은 매창의 가슴에 깊은 정을 남겼다. 그 정은 매창의 시심으로 피어났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부안읍내 성황산 서림공원 입구에 있는 매창의 '이화우' 시비




흔히 ‘이화우’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시는 매창의 여러 시 가운데 유일한 한글시조다. 매창은 봄날 흩날리는 배꽃을 보고 이를 ‘이화우(梨花雨)’라고 표현했다. 하늘이 준 재주가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표현이 아닐까. 아마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듯한 한시 한 편이 더 있다.



東風一夜雨(동풍일야우)  하룻밤 봄바람에 비가 오더니

柳與梅爭春(유여매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대차최난감)  이 좋은 시절에 차마 못할 건

樽前惜別人(준전석별인)  잔 잡고 정든 님과 이별하는 일



매창이 이러할 진대 그립기는 유희경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한양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매창이 살고 있는 부안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니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오동잎에 비 뿌릴 제 애가 탄다오



유희경의 '매창을 생각하며' 시비




매창이 ‘이화우(梨花雨)’라니 유희경은 ‘오동우(梧桐雨)’란다. 두 사람이 이별할 때 계절은 봄이었는데, 그 새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바뀌었다. 두 사람은 두 계절 동안을 보지 못하고 지낸 셈이다.



그럭저럭 세월은 다시 수 년이 흘렀다. 유희경은 유희경대로, 매창은 매창대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게 되었다. 이런 경우 씻기 어려운 정한(情恨)을 안게 되는 쪽은 대개 여성이다. 특히 당시 매창은 ‘노류장화(路柳墻花)’랄 수 있는 기생 신분이었다. 마음에 이어 몸마저 상한 매창이 남긴 단장시 한 편을 소개하면,



相思都在不言裡(상사도재불언리)  말은 못했어도 너무나 그리워

一夜心懷鬢半絲(일야심회빈반사)  하룻밤 맘고생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欲知是妾相思苦(욕지시첩상사고)  소첩의 맘고생 알고 싶으시다면

須試金環減舊圍(수시금환감구위)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     



한양(서울)과 부안.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젠 두어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이 거리를 놓고 마치 서로가 지구 반대편에라도 있는 듯하다. 핸폰과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두 사람의 사랑얘기는 마치 수 천년 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로 들린다.



문명의 발달로 편리는 해졌지만,

깊은 정(情), 가슴에 품은 한(恨)은 이제 그 어디서 만날 꺼나....



출처: 주소 :: http://blog.ohmynews.com/jeongwh59/rmfdurrl/188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