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에 대하여(류해옥신부)

2013. 5. 30. 18:21좋은글

 

대청호와 금강이 만나면-물안개 | 류해욱신부 묵상글
전체공개 2012.11.08 16:17
 
 
 

 

 

 


 

 

               대청호와 금강이 만나면-물안개

  사진: 류해욱 신부

  옥천에서 9박 10일 수녀님들 피정 지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곳 메리워도 영신수령원 피정집 이층 성당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그곳에서 밖을 보면 대청호와 만나 호수처럼 넓어진 금강이 선경처럼 펼쳐져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저는 늘 피정 강의 끝에 시를 하나씩 읽어 주지만 이번에는 매 미사에서도 영성체 후 묵상으로 시를 하나씩 읽어주었습니다. 순전히 분위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아침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숨이 막히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오늘은 우선 물안개 시와 더불어 사진
 진한 커피 향기의 가을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물안개

               - 김승영

 

푸른 수면에서

네 그림자를 보았다면

그건 참

고운 그림으로 출렁일 거야

 

 물안개는

아주 깊숙이 너를 안고

노랠 부를 거야

 

덧없는 노래를 그토록

아름답게 부르고 있을 거야

 

 어느덧

물안개

걷힐지라도

나는 혼자남아

더욱 덧없는 노래를 부르리라

 

물안개는 왜 이리 서러운가


저는 물안개가 마치 축복처럼 느껴졌는데, 김승영 시인은 ‘물안개가 왜 이리 서러운가’ 라고 읊고 있네요.

  물안개와 잘 사귀지 못했나봅니다. 하여 박완호 시인의 ‘안개와 사귀는 법’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안개를 사귀는 법  
            -박완호

 

서두르지 말고 가만 가만

무릎 아래 가끔씩 낯 내비치는 길목을 따라 서서히 스며들어야 한다

천천히 발소리를 죽여 가며 물기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바람의 손짓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소리 없이 흔들리는

안개의 늑골 사이를 파고들어야 한다

 

 두 볼에 와 닿는 안개의 손길

귓구멍을 간질이는 안개의 숨결

흐릿한 상형문자를 중얼거리는 안개의 말들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게 될 때

발밑을 흐르는 물살 위에 무장해제한 걸음을 올려놓아야 한다

 

 안개는 스스로를 숨기지 않는다

저를 지우는 순간 안개는 이미 안개가 아니다

자신을 송두리째 드러내어 누군가를 가려주는

겉과 속이 따로 없는 안개

거기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헤어날 수 없는 늪 가운데 빠지고 만다

 

 안개는 안개를 만나 안개의 일가가 된다

안개의 마을에서 안개의 아이를 낳고 안개의 음악과 시를 낳는다

 

안개의 나라에 가 닿으려면

가만히…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유리잔처럼 깨지기 쉬운 수정막에 음화陰畵를 새겨 넣어야 한다

 

이목구비가 흐릿해질수록 점점 또렷해지지
눈빛이 새벽을 말갛게 물들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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