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난의 미학

2006. 3. 27. 21:53

난의 미학

 

1.난은 사랑을 알게 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많은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은 마음껏 나타낼 수도, 조금은 감출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이 인간의 정을 그리워하는 것이 난이다.
인간에게 길러지는 식물은 오직 인간의 사랑을 기다리며 그 사랑을 답하며 살아간다.
난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정을 쏟고 사랑을 준 만큼 길러진다.
난을 사랑하는 것을 배움으로 우리는 사랑을 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아름다움 중에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더욱 맑게 꽃이 피고 향이 맺히는 것이다.
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을 알게 한다.



2.난은 관조(觀照)의 세계를 보여준다.

난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을 좋아하고 느끼는 것은 정신의 여유로움에서 그 실체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각박함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예(藝)의 실체를 맛보았을 때,
그 맛은 속세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여유스러움과
그것을 느끼는 관조의 멋을 볼 수 있는 것이다.

 

3.난은 예(藝)를 알게 한다.

예술이란 원래 농부들이 땀을 흘리고 거두어들이는 기술을 뜻하는 말이다.
난에 있어 열심히 기르고 아름답게 자라는 것을 보며 느낄 수
있는 것, 바로 그 자체가 예라 할 수 있다.

난이 지니는 엽선(葉線)의 흐름 하나 하나는 본능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선(線)의 미(美)에 매료를 당하게 한다.
난을 가까이 하는 순간 곡선의 완만하고 힘이 있는 그침,
부드러운 공간의 미를 알게 된다.
난은 그 자체가 이미 미술품(美術品)이기 때문이다.

 

4.난의 아름다움은 난이 주는 의미에도 스며 있다.

난은 늘 푸르다.
늘 푸르므로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소나무와 같은 절개를 지닌다.
절개는 선비의 도리다.    선비란 목에 칼이 들어가도 자신의 뜻과 지조를 버리지 않음을 뜻한다.

뜻과 지조를 지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안다는 것이다.
도리를 안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를 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가치를 안다는 것은 선비의 도(道)를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정도(正道)를 아는 것이다.

5.난은 보이지 않고 맛볼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향(香)의 아름다움을 갖는다.

모든 물체에는 스스로 내는 방향(芳香)이 있다.
돌 부스러기, 물까지도 향을 느끼게 한다.
향은 그 물체가 내는 품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도(道)를 아는 사람일수록 향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서둘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도 진실을 알 수 있게 한다.

향은 난에게서 떼어 낼래야 뗄 수 없는 품격이다.    스스로 내는
향 하나만으로도 주위에 절로 모이게 하는 덕(德)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난하면 저절로 향을 생각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격이 아름다움을 높이게 한다.

 

6.난에게는 자족(自足)의 아름다움이 있다.

많은 식물이 햇빛과 수분과 영양이 많으면 자랄 수 있을 만큼 욕심껏 자란다.
그러나 난은 알맞게 자라 필요 이상의 잎장 수를 늘리지 않으며 길이 또한 적당한 때에 자람을 중지한다.
스스로 족함을 안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음이요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안다는 것이다.
자족의 아름다움은 욕심의 정화된 달관의 아름다움이다.

7.난의 아름다움은 조화의 미에서도 나타난다.

난은 긴 잎과 짧은 잎, 서는 잎과 숙인 잎, 그리고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맞부딪쳐 있기도 한다.
그 잎들이 분 안에 뿌리를 담으면서 생명의 빛으로 존재한다.    생명의 빛으로 존재함로써 선(線)에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자연스러움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조화롭다는 것은 모두가 제자리에 있을 때를 말한다.    모두가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자기 위치를 안다는 것이다.    자기 위치를 안다는 것은 다른 것의 위치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받아 들일 수 있음이다. 그렇기에 난에게서 얻음 그 자체가 도(道)라 할 수 있다.

 

8.난은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다.

난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신아가 나오고 그 신아가 자라서 벌브를 형성하고 형성된 벌브에서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운 후에는 다시 신아가 나오고 알게 모르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의 미술품으로 자란다.

난의 성질을 파악하여 난의 원하는 상태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미술품이 된다.
시간과 사람의 정성이 빚어낸 아름다운 미술품은 오랜 기다림의 결과에서 오는 것이다.

 

9.난은 중용(中庸)의 미를 알게 한다.

난의 자연상태는 공중도 아니고 땅속 깊은 곳도 아닌 곳에 곁으로 뿌리를 뻗고 하늘도 땅도 아닌 지표면의 부드러운 부엽토(腐葉土)에 자리를 한다.
비료가 너무 많아도 안되고 너무 없어도 자라지 못한다.    물기가 너무 많아도 죽고 너무 적어도 안 된다.

햇빛이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어렵다.    너무 습해도 안되고 너무 말려도 죽는다.    햇빛이 강하면 차광막을 하고 약하면 햇빛의 역할을 할 장치가 필요하다.
배양토는 흙도 아니고 돌도 아닌 작은 알갱이를 쓴다.

모든 것이 중용이다.
풀이면서도 몇 년이 가는 나무처럼 생명이 있고 생명이 긴 나무처럼 오래 사나 풀의 형태를 한 것도 중용의 도이다.
우리는 난에게서 중용의 도를 배운다.



10.난은 생명의 신비로움을 알게 하는 아름다움을 갖는다.

난을 가까이 하기 전에는 그다지 변하지 않는 그저 푸르기만 한 초본 식물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가까이 하게 되면서 난의 변화에 매료되고 만다.

난은 아주 여리디 여린 투명한 빛으로 각기 다른 빛을 띠고 개성 있게 신아를 내민다.    신아를 내밀 때의 환희로움을 맛보는 것은 난을 아는 사람만의 세계이다.
난은 자라면서 그때그때 마다 각기 다른 위상으로서 변화를 보인다.    꽃봉오리가 나오면 꽃봉오리의 빛 또한 난 마다 개성 있는 빛으로 다르게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투명하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고 투명한 포의에 붉은 빛이 감도는 속살이 보이듯 눈부신 꽃봉오리의 빛이 있는가 하면 먹빛처럼 짙은 자색의 빛을 보여주기도 한다.
꽃이 피면 또 어떤가. 꽃잎의 형태가 꽃마다 개성으로 나타난다.
둥그런가 하면 길기도 하고 두터운가 하면 얇기도 하고 정형인가 하면 변형도 보이는 그러면서도 그 빛이나 형태는 어김없이 그 정해진 형질을 나타내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갖는다.

뿐이랴.    신아가 자라 잎의 형색으로 되었을 때 그 또한 본연의 모습을 어김없이 스스로 찾는다.
잎 끝이 둥글어야 될 품종은 둥글고 잎 끝이 뾰죽 해야 될 품종은 뾰죽 하고, 잎에 줄이 들어가는 품종은 줄이 들고 반점(斑點)이 들어갈 것은 반점이 들어간다.

모두 생명의 빛에서 나온 본래의 모습이다.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자연이 준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11.난에는 희생의 아름다움이 있다.

모든 희생은 평상시의 좋은 상태에서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그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해 어느 하나가 온 힘을 다른 것에 밀어주는 것을 말한다.
생명까지 바치면서 주는 것이다.    난이 그러하다.

어미 촉과 어린 촉이 같이 공존하다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어미 촉은 본능적으로 어리디 어린잎으로 있는 힘을 보내 보호한다.
그럼으로써 적응이 되어 있는 어미 촉은 희생이 되어 죽고 새 촉은 강한 생명력으로 건강하게 버텨나간다.

자기 종족보존을 위해서는 자기보다 어린잎을 보호하는 특별한 모성애를 가진 것이다.    자기는 희생이 되더라도 새 촉이 살면 같이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2.난의 아름다움은 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난은 투명하리 만치 맑은 빛으로 잎을 내고, 그 잎이 자라서 구경을 살찌우고 꽃을 피우고 새끼를 쳐 번식하고, 잎의 수명이 다하면 그 잎은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지 않고 오그라지지 않게 그대로 떨어져 나간다.
이는 꽃을 피운 후의 젊음이 지난 다음에 도는 사그리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잎이 떨어졌다 해도 그 구경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후손들에게 끊임없는 영양공급을 받기 때문이다.

식물 거의가 탄소동화작용을 하지 못하면 썩어 가나, 난의 구경은 오히려 영광으로 남아 끊임없는 영양을 보급 받는 효의 아름다움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난은 대주로 있는 것을 좋아하고 세력이 더욱 불어 가는 것이다 .

 

13.난에는 나누는 아름다움이 있다.

난을 키우면 정성을 쏟는 만큼 번식의 보답을 받는다.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귀하지만 그 귀한 의미를
나누어주는 기쁨을 알게 된다.

그것은 금란지교(金蘭之交)를 낳게 하는 그래서 정이 오감을
느끼고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

 

14.난에는 배움의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에게 배우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배움은 새로움을 가져오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난은 자기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이다.
그러기 때문에 배우고 그것을 응용하는 일은 매우 즐겁게 행해진다.

배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난은 배우는 아름다움과 겸손을 가르친다.
난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한다.    난을 가까이 함으로 이야기했던 모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알게 모르게 그 아름다움들은 각자의 심성에 박히어 어느덧 아름다운 성정을 닮아 간다는 데에 진정한 난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겠다.

 

 

Copyright(C) 아름다운정원 All right Reserved   H.P : 019-309-5113

사업자등록번호:119-06-20374    E-mail;baraz@netian.com

출처 : 난의 미학
글쓴이 : 먼 바다 원글보기
메모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꽃들의 웃음편지  (0) 2007.06.16
蘭 에게/ 김승영  (0) 2006.12.27
[스크랩] 금난초  (0) 2006.03.25
[스크랩] 은난초  (0) 2006.03.25
[스크랩] 소심..  (0) 200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