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시무시일(2) -직역, 강설-

2009. 5. 4. 19:53좋은 시

│본문│


一始無始一이니라.

이니라.



│직역│


하나는 비롯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었느니라.



│강설│


 ‘하나라고 하는 것은 비롯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었다(一始無始一).’는 대목은「천부경의 <시장始章>입니다. 곧 ‘하나’의 시작을 밝힌 대목입니다.

 ‘하나’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하나는 비롯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이 ‘하나’라고 하는 것, 그것은 ‘언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하나다’는 말입니다. 언어와 생각이 있기 전부터 비롯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우주’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존재存在’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주와 존재는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존재가 없으면 우주도 없습니다. ‘나’가 없으면 우주도 없고 만물도 없다는 말입니다.

 ‘나’가 있음으로 우주와 만물이 있게 되는데, 그러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하나’는 ‘비롯됨이 없는 하나다’는 말입니다. 어느 출발점의 ‘하나’가 있어서 지금의 ‘하나’를 낳아 준 것이 아니라 ‘하나’는 원래부터 항상 그 ‘하나’로서 그대로 있기 때문에 출발점에서 진행해 온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비롯됨이 없는 그 ‘하나’라고 하는 겁니다.

 이 ‘하나’의 특성은, 첫째 ‘시공간의 부동不動’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서울에서 일산까지 거리가 있는데 만약 서울에서 출발해 가지고 일산으로 왔다면 그 출발점은 서울이고 종점은 일산이 됩니다. 그래서 서울은 ‘시’이고 일산은 ‘종’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는 시작과 끝이 한 자리에 있는 ‘하나’인 까닭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항상 ‘하나’에서 시작하여 ‘하나’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천겁千劫이 지나더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바로 ‘하나’입니다. 갔다 왔다 한 것이 아닌 그 ‘하나’로서 장구長久히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두 번째 특성은 분화의 결과가 항상 ‘하나’라는 것입니다. 천 개 만 개로 분화 하더라도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 ‘하나’는 이 두 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그 ‘하나’만이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비롯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었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비롯됨이 만약 있다면 없는 것에서 시작이 되어야 되거든요. 없던 것이 어느 시점에서 생겨나야 비롯됨이 있을 터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는 없다가 생겨난 ‘하나’가 아니라 본래부터 있던 ‘하나’이기에 시작이 없는 ‘하나’인 것입니다. 오직 원래 그대로 있을 뿐인 거예요. 모든 만물은 바로 비롯됨이 없는 이 ‘하나’에서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물萬物

만사萬事가 生하는 근원인 이 ‘하나’를 알아버리면 우주 만물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거야 당연한 것이죠. 이 ‘하나’라고 하는 속에 우주 만물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이 ‘하나’를 아느냐 모르느냐를 도를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 ‘하나’는 무수한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그 변화하는 모습을 뒤에 설명해 놓고 있어요. 그게 바로 ‘析三極無盡本석삼극무진본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 一積十鉅無匱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이라는 대목입니다.

출처 : 일시무시일(2) -직역, 강설-
글쓴이 : 견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