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짧은 생각 하나 /한양숙

2010. 3. 27. 22:00수필

    한양숙

1964년 生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9동 거주

부산교육대학 졸업

現, 부산 안민초등학교 근무

E-mail : yshan1356@hanmail.net




*비오는 날 짧은 생각 하나



  이른 겨울비인지 늦은 가을비인지 모를 찬비가 내린 11월 마지막 날, 아침부터 기분이 찹찹한 것이 밀려놓은 숙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등교하는 아이처럼 출근길이 그리 즐겁지 않다. 그러나 운전을 하면서 내다보는 차창 너머의 세상은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비에 젖은 벚나무의 단풍 빛은 어제보다 더욱 곱고, 하루 새 떨어진 낙엽은 고운 새색시마냥 붉은 화장을 하고 길가에 다소곳이 앉아 꼭 누굴 기다리는 것 같다. 다가가서 말이라도 부쳐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젯밤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 내용이 내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올 봄에 뇌경색과 뇌출혈로 연이어 병마에 시달리신 아버지는 그 이후로 가벼운 치매를 앓고 계신다. 몸은 멀쩡하시지만 정상적인 언어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으셨다. 말도 그렇고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고 보니 본인이 느끼는 답답함이야 오죽 하실까.

  다세대주택의 주인인 아버지는 매달마다 전기세와 수도세를 손수 계산하시어 은행에 납부하는 일을 도맡아 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일이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 되었다. 예순이 넘어 일 년 남짓 다닌 한글학교를 통해 겨우 우리글을 깨우치신 엄마에게는 이런 산수 계산이 아직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다. 매달 말일이면 엄마는 딸인 내게 눈치 아닌 눈치를 보시며  "오늘 바쁘나? 시간 있으면 전기세 계산 좀 해줄래?"하시며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미안해하신다. 고지서를 펼쳐놓고 계산기를 뚝딱거리며 모녀간에 조금이라도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면 예의 성질 급한 아버지는 무언가 알듯 말듯 한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일에 관여하시려한다. 그러다 이내 자신이 듣기에도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그 어눌함에 기가 막히시는지 다시 말문을 닫으신다.

  아버지의 일과는 늦은 아침을 드시고 정오쯤 시청으로 운동하러 가시는 게 유일한 일거리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외출이다. 시청 앞 광장은 넓고 휴식하기에 좋은 장소여서 언제나 아버지 연배의 노인네들이 여기 저기 무리지어 모여 계신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 근처를 지나다가 시청에 나와 운동하고 계실 아버지를 잠시 보려고 그 곳에서 아버지를 찾아본다. 그 때마다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찡한 슬픔을 느낀다. 다른 노인네들은 친구들과 여럿이 어울려 장기를 두시거나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버지는 언제나 혼자 계신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한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혼자 걷고 계시거나 아니면 가만히 혼자 벤치에 앉아 계신다. 누군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렇게 혼자 놀다 오신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워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실 시간 즈음 되면 엄마는 시청에 나가 잠시 동안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신다. 그리곤 두 분이 나란히 지는 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이제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는 오로지 엄마뿐인 셈이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살갑지 않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권위의식에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어쩌다 휴일이 되어도 가족들과 지내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더 좋아하셨기에 젊어서 엄마 속을 무던히도 태우셨다. 그런 아버지를 지금처럼 애정을 갖고 대하기까지 나 역시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채,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엄한 표정과 단정적인 어투로 언제나 일방적인 지시나 훈계조로 역정을 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처럼 어린 아이같이 순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슬프게도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나서 부터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아버지의 병을 통하여 비로소 아버지에 앞서 한 남자의 여리고 나약한 모습을 보았고, 그 속에서 사랑이 필요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와 딸의 끈끈한 정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일요일이었던 어제, 아버지는 하루 종일 엄마에게 딸이 보고 싶다며 나와 바쁜 사위의 안부를 물어보시곤 왠지 안절부절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보다 못한 엄마는 비가 내리는데도 아버지를 모시고 지하철을 타고 양산까지 소풍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그 곳에 다녀오시고는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기분이 좋아지셔서 잘 지내시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오늘 퇴근 후에 꼭 아버지를 뵈러 갈 참이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언제나 내 인생의 스승이셨다. 스승으로서 아버지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금까지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제 나는 아버지의 좋은 영향력과 나쁜 영향력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분별력보다 더 소중하고 가슴 뭉클한 사실은 이제 내게 아버지는 둘도 없는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늦게나마 아버지의 사랑에 눈을 뜨고, 외로운 아버지를 마음으로 안을 수 있어서 요즘 나는 행복하다.




[심사평]

  본지 제21기 신인작품 공모에서 산문부문 ‘한양숙’님의 응모작 중 -비오는 날 짧은 생각 하나-를 당선작으로 한다.

  문학에 입문하는 작가들의 글쓰기 기법이란 부득이 성분에 맞는 주제설정과 설정된 규칙 안에서 문학의 지향점을 요구한다. 가령, 詩가 지닌 성질의 개연성, 수필이나 소설이 주도하려는 허구와 진실의 방향추구, 반면 수필문학은 주관이 강하게 작용해서 문화와 사회의 관점을 피력하는 것을 나름의 기준으로 들고 있다. 한양숙 당선자의 수필 속에 심어놓은 즉, 아버지라는 심적 대상을 통하여 진솔한 자기고백과 인간의 내면을 끌어올리며 잔잔한 감동으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누구나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아버지는 문학적 삶에 있어 뿌리이고 기둥이며 정신이라는 철학의 넓이까지 포함한다. 바꾸어 말하면 문학을 삶의 정신이라고 할 때 정신의 모티브는 아버지로 비롯되고 그의 양식으로 정신은 지탱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인생과 사상이 마악 자유로울 때 아버지라는 버팀목은 이를 통제하거나 새로운 문화의 경험에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살갑지 않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권위의식에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어쩌다 휴일이 되어도 가족들과 지내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더 좋아하셨기에 젊어서 엄마 속을 무던히도 태우셨다.”-응모작 ‘비오는 날 짧은 생각 하나’중에서-


  그것은 당신의 시대와 삶의 의지가 사랑의 덕목과는 이완된 경로로 흐르기 때문에  때로는 혼란의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름지기 작가란, 목적을 지향할 때 지혜의 우물에서 씻어낸 나를 건져내는 일이기도 하다. 착오와 불합리의 모난 부분을 비비고 문질러 떡시루 펴듯 골고루 펼쳐나가는 것이 또한 수필의 덕목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를 지금처럼 애정을 갖고 대하기까지 나 역시도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채,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응모작 중에서)’는 당선자의 고백은 정서와 환경의 지혜로운 환기를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본문에서 나타나듯 한양숙의 수필은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이끌어가는 문장력과 자기결속을 다지며 어떠한 형식에도 구속되어 있거나 영향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관념적 모순을 지양하며 과감한 일탈을 지향하고 있지도 못하다. 인간은 시대와 문화 안에 속해 있고 그것의 부속물로서 진정한 값을 지닌다는 교육된 환경의 자신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수필의 궁극적 추구는 우선 이러한 문화의 컨텐츠를 과감하게 탈피하고 이탈해 보는 것이 문제의 해소이며 문학의 해결이기도 하다. 좀 더 독자와 문학의 관점에서 자신을 충분히 꺼내들고 나를 발견하는 시점이 필요하다. 비로소 문학은 그 가치로서 향기를 지니게 될 것이다.

  어휘선택이나 문장의 마디를 이어가면서 적잖이 고루한 흐름으로 표현의 맛깔스러운 능력이 분포되지 않아 글 전체의 탁한 현상이 일고 있다. 이는 수필이 지니려는 속성의 모랄(탐구)이 부족하고 단지 휴머니티의 애끓는 감정의 자기애로서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문체의 군더더기가 발견되지 않고 간결한 리듬감과 표현은 좋으나 이를 좀 더 극대화 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자기만의 주제를 설정했다 하더라도 독특한 기법이나 사건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때론 수필의 요소가 취하고 있는 재미와 위트라는 감각을 상기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위트와 재미보다는 아버지의 인생관을 통하여 진솔한 철학적 단면을 엿볼 수 있었으며 담담하게 그려나간 아버지의 서정은 문학의 컨텐츠를 의도적으로 설정했다거나 미화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있다는데 더욱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글은 그러고 보면 나의 자화상이다. 한양숙의 응모작이 이를 결정하고 있음이다.

  응모작 결말부분, “이제 나는 아버지의 좋은 영향력과 나쁜 영향력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분별력보다 더 소중하고 가슴 뭉클한 사실은 이제 내게 아버지는 둘도 없는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늦게나마 아버지의 사랑에 눈을 뜨고, 외로운 아버지를 마음으로 안을 수 있어서 요즘 나는 행복하다.”를 상기시켜 보며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 : 홍종기(문학평론가) 이화엽(문학평론가) 박세문(시인)

자문 : 홍석우(학자) 박희호(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